삼성·애플, 싸우면서 닮아간다

    입력 : 2016.03.28 10:56

    [수년째 특허분쟁 업계 투톱… 서로 디자인·마케팅 따라해]


    애플, 삼성처럼 중저가폰 출시… 삼성, 애플처럼 최신형 교체 전략
    기술 격차는 줄어들고 시장 포화… 혁신 없어 소비자 선택권 좁아져


    '욕하면서도 닮는다.' 스마트폰업계의 라이벌로 수년째 특허 분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최근 서로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대형화하고 카메라 기능을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 구형 스마트폰을 반납하면 신제품으로 바꿔 주거나 주력 제품과 별도로 중저가 제품을 출시하는 등 마케팅 전략까지 닮아가고 있다. 심지어 애플이 내년쯤에는 삼성처럼 화면 양쪽을 구부린 아이폰을 내놓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스마트폰 업계의 투톱이 닮아가는 것은 기술 격차가 갈수록 줄어든 이유도 있지만,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탓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혁신 제품보다는 디자인이나 마케팅에 의존해 중저가 시장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란 것이다. 이를 위해 양사는 특허권이 없는 상대의 장점은 고민하지 않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회사가 비슷한 제품과 전략을 내놓게 되면 결국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디자인·마케팅 따라 하는 삼성·애플


    삼성전자를 카피캣(copy cat·모방자)으로 비아냥거렸던 애플은 최근 첫 중저가 스마트폰 '아이폰SE'를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S 시리즈 사이에 갤럭시노트나 중저가 모델을 출시하는 제품 다원화 전략을 따라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IT(정보기술) 업계에선 애플이 내년쯤 화면 양옆을 구부린 '엣지' 아이폰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런 전망은 애플이 이르면 내년부터 아이폰에 삼성이 먼저 사용했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화면 스스로가 빛을 내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화면을 사용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OLED는 현재 대부분의 스마트폰에 쓰이는 LCD(액정디스플레이) 화면에 비해 얇고 구부리기 좋은 소재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애플의 마케팅 전략을 따라 하고 있다. 최근 신제품 갤럭시S7을 출시하면서 '갤럭시 클럽'이라는 판매 정책을 채택한 것이 대표적이다. 소비자가 2년 할부로 구입한 갤럭시S7을 1년만 쓰고 반납하면서 최신형 제품을 새로 구입하면, 남은 1년치 할부금을 면제해주는 것이다. 이는 애플이 지난해 9월 아이폰6s를 출시하면서 도입한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과 같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마케팅 차원에서 일반 사용자들이 갤럭시S7으로 직접 찍은 서울 풍경을 웹사이트에 전시할 예정이다. 갤럭시S7의 카메라 성능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애플은 이미 지난해부터 사용자들이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전 세계 옥외 광고판에 전시하는 '아이폰으로 찍다(shot on iPhone)' 광고 캠페인을 해오고 있다.


    두 회사가 서로 닮아가기 시작한 건 2014년부터다. 애플이 2014년 5.5인치 화면의 '아이폰6 플러스'를 내놓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삼성전자의 대(大)화면 스마트폰 갤럭시노트 시리즈를 따라 한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거꾸로 삼성전자는 배터리 분리형 스마트폰을 고수해 오다가 지난해 갤럭시S6부터는 아이폰처럼 배터리 일체형 디자인으로 바꿨다.


    ◇"소비자 선택권만 줄어" 지적도


    전문가들은 양사의 상대방 따라 하기에 대해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이를 타개할 혁신 능력도 한계에 도달한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과감한 신규 수요 창출보다는 기존 고객을 지키는 것과 가격 경쟁력 확보, 안정적인 부품 공급 체계 유지 등 비용 관리의 중요성이 더 부각된다는 것이다. 서강대 정옥현 교수(전자공학)는 "협력사에 주는 주문 물량이 줄면 납품 단가가 올라 결국 제품 가격 상승 요인이 된다"며 "프리미엄 제품만 판매해온 애플의 경우 부품 물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중저가 제품을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양대 홍성태 교수(경영학)는 "서로 상대를 따라 하다 보면 나중엔 각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이 흐려지고 가격 경쟁만 남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