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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트렌드의 딱! 반걸음만 앞서가라

정상혁 기자 ㅣ digihyuk@chosun.com
등록 2010.11.25 13:56 / 수정 2010.11.29 17:29

2000년 출시된 인터넷TV. TV를 통해 인터넷을 하고 가정에서 화상전화를 하는 모습

요즘 많은 언론사 또는 연구기관에서 IT산업의 미래를 예측하는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업계의 내로다 하는 전문가들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 해당 사업의 향후 전망 및 미래 전략에 대해 목놓아 외칩니다. 청중은 화려한 DB와 말솜씨로 사업의 명확한 미래를 집어주기 원하기 때문에 사업의 불확실성을 강조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전문가들은 이런 자리에서 그닥 환영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IT전문가들 가운데 족집게 수능강사는 없습니다. 그들 역시 불확실한 데이터와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의 가능성을 예측할 뿐입니다. 특히 ‘반도체 집적도가 1년에 두 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 처럼 기술 트렌드는 어느정도 예측 가능합니다만 이를 활용한 고객 서비스의 시기 예측에 있어서는 과거 사례를 비춰봤을 때 적중률이 현저히 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됐던 인터넷TV 관련 기사의 일부입니다.

“전자부품연구원은 이노버텍과 공동으로 인터넷 접속 기능 외에 이메일과 워드프로세서, 인터넷 노래방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이 추가된 셋톱박스를 개발해 6월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기륭전자도 자체 셋톱박스를 개발해 지난해 컴덱스쇼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웹TV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삼성전자는 셋톱박스를 내장한 웹TV를 다음달 새로 내놓는다. 인터넷TV 회사인 넷-TV코리아도 텔레비전으로 인터넷 검색은 물론 영상전화도 할 수 있는 셋톱박스를 개발해 다음달부터 판매에 들어간다”

과거인터넷TV

2010년11월 현재 작성한 것이라 해도 믿을 만한 내용의 이 기사는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0년4월20일 한겨레21에 게재된 것입니다. 당시 초고속 통신망의 성공적 보급에 고무된 각종 IT사업자들은 PC에서 TV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모든 가정의 TV를 인터넷TV로 바꾸겠다는 야심찬 사업모델을 수립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1996년 ‘웹TV네트워크’라는 인터넷TV 회사가 설립됐는데 1년 후인 97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기업을 인수해 일본, 캐나다 등으로 서비스 지역을 넓혀갔습니다. 또 타임워너는 같은 해 75만대의 웹TV용 셋톱박스를 주문해 서비스를 시작했고 AT&T, 유에스웨스트 등의 통신업체들도 속속 이 사업에 뛰어들었죠. 일본도 98년 NTT, 소니, 후지쓰 등 대형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웹TV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는 98년 ‘인터넷TV네트워크스’와 ‘클릭TV’ , ‘홈TV네트워크’ 등이 인터넷TV 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가운데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가 한 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의 성공을 막았을까요? 당시 인터넷TV 서비스는 총체적 부실 덩어리였기 때문에 실패요인을 몇가지로 압축해 설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서비스의 근간을 이루는 기술, 콘텐츠 모든 측면에서 준비가 미흡했었습니다. 초고속통신망 보급이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었지만 동영상을 구현하기에는 전송속도 면에서 문제가 많았고, 주사선 방식의 TV해상도가 너무나 떨어져 콘텐츠 번짐 현상마저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가입자가 매력을 느낄만한 특화된 콘텐츠가 없다보니 당시 유행하던 앗싸 노래방 서비스가 킬러 콘텐츠로 부각되는 웃지못할 상황마저 발생했었죠. 

당시 모든 업체들은 “남보다 앞서 가되 반걸음만 앞서가라”는 IT비즈니스 제1 수칙을 망각했습니다. 오로지 인터넷TV라는 IT비즈니스 트렌드를 선도해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리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졸속 상품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당한 것은 자업자득이었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마저 인터넷TV 비즈니스는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마트TV라는 좀 더 세련된 이름으로 애플과 구글이 야심차게 몰아 붙이고 있지만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발전된 기술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확보 및 마케팅, 유통 등의 난관을 겪고 있습니다.

COMPAQ PDA

트렌드를 너무 앞서나가 실패한 사례는 인터넷TV 이외에도 많습니다. 스마트폰의 전신이라 볼 수 있는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s)는 출시 이후 1년 남짓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키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필자도 2004년 얼리어답터의 전유물이던 COMPAQ PDA 5450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첩으로 쓰기엔 데이터 입력이 불편하고 정보기기로 쓰기엔 딱히 매력적인 콘텐츠가 없어 서랍 속에 고이 모셔뒀던 기억이 납니다. PDA실패의 결정적 이유는 PC의 보완재로 포지셔닝 했지만 디스플레이, 배터리, 컴퓨팅(멀티미디어 처리) 측면에서 기술적 한계가 있었고, 사용자가 원하는 응용 소프트웨어와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보 입력을 위한 스타일러스 펜 사용과 응용 프로그램을 찾고 설치하는 과정이 불편했던 것도 실패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NC소프트의 MMORPG 리니지

지금은 세계적인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로 성장한 NC소프트사의 리니지도 한 때는 시장을 너무 앞서나가 쓴 맛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애당초 가정용 초고속 인터넷망의 빠른 보급을 기대하며 개발된 리니지는 97년 당시 ADSL가입자 수가 생각보다 늘지 않아 베타 서비스를 시작해 놓고도 시장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IMF로 인해 회사에서 쫓겨난 명퇴자들이 대거 PC방 사업에 뛰어들면서 판로가 생겼고 이내 NC소프트사는 온라인 게임시장의 강자로 등극하게 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국가적 위기였던 IMF사태가 이 회사를 살리는 계기가 됐던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비즈니스맨들이 컨퍼런스의 초청연사들이 쏟아내는 IT트렌드의 장미빛 전망에 가슴 설레이고 있을 것입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한 새로움에 도전하는 것은 사업가의 숙명입니다. 그러나 잠시 뛰는 가슴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앞서나간 비즈니스의 실패 사례를 교훈 삼아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미래 트렌드의 딱! 반걸음만 앞서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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