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출시된 인터넷TV. TV를 통해 인터넷을 하고 가정에서 화상전화를 하는 모습
다음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됐던 인터넷TV 관련 기사의 일부입니다.
“전자부품연구원은 이노버텍과 공동으로 인터넷 접속 기능 외에 이메일과 워드프로세서, 인터넷 노래방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이 추가된 셋톱박스를 개발해 6월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기륭전자도 자체 셋톱박스를 개발해 지난해 컴덱스쇼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웹TV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삼성전자는 셋톱박스를 내장한 웹TV를 다음달 새로 내놓는다. 인터넷TV 회사인 넷-TV코리아도 텔레비전으로 인터넷 검색은 물론 영상전화도 할 수 있는 셋톱박스를 개발해 다음달부터 판매에 들어간다”
과거인터넷TV
2010년11월 현재 작성한 것이라 해도 믿을 만한 내용의 이 기사는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0년4월20일 한겨레21에 게재된 것입니다. 당시 초고속 통신망의 성공적 보급에 고무된 각종 IT사업자들은 PC에서 TV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모든 가정의 TV를 인터넷TV로 바꾸겠다는 야심찬 사업모델을 수립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1996년 ‘웹TV네트워크’라는 인터넷TV 회사가 설립됐는데 1년 후인 97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기업을 인수해 일본, 캐나다 등으로 서비스 지역을 넓혀갔습니다. 또 타임워너는 같은 해 75만대의 웹TV용 셋톱박스를 주문해 서비스를 시작했고 AT&T, 유에스웨스트 등의 통신업체들도 속속 이 사업에 뛰어들었죠. 일본도 98년 NTT, 소니, 후지쓰 등 대형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웹TV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는 98년 ‘인터넷TV네트워크스’와 ‘클릭TV’ , ‘홈TV네트워크’ 등이 인터넷TV 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가운데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가 한 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의 성공을 막았을까요? 당시 인터넷TV 서비스는 총체적 부실 덩어리였기 때문에 실패요인을 몇가지로 압축해 설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서비스의 근간을 이루는 기술, 콘텐츠 모든 측면에서 준비가 미흡했었습니다. 초고속통신망 보급이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었지만 동영상을 구현하기에는 전송속도 면에서 문제가 많았고, 주사선 방식의 TV해상도가 너무나 떨어져 콘텐츠 번짐 현상마저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가입자가 매력을 느낄만한 특화된 콘텐츠가 없다보니 당시 유행하던 앗싸 노래방 서비스가 킬러 콘텐츠로 부각되는 웃지못할 상황마저 발생했었죠.
당시 모든 업체들은 “남보다 앞서 가되 반걸음만 앞서가라”는 IT비즈니스 제1 수칙을 망각했습니다. 오로지 인터넷TV라는 IT비즈니스 트렌드를 선도해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리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졸속 상품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당한 것은 자업자득이었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마저 인터넷TV 비즈니스는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마트TV라는 좀 더 세련된 이름으로 애플과 구글이 야심차게 몰아 붙이고 있지만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발전된 기술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확보 및 마케팅, 유통 등의 난관을 겪고 있습니다.
COMPAQ PDA
NC소프트의 MMORPG 리니지
지금은 세계적인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로 성장한 NC소프트사의 리니지도 한 때는 시장을 너무 앞서나가 쓴 맛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애당초 가정용 초고속 인터넷망의 빠른 보급을 기대하며 개발된 리니지는 97년 당시 ADSL가입자 수가 생각보다 늘지 않아 베타 서비스를 시작해 놓고도 시장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IMF로 인해 회사에서 쫓겨난 명퇴자들이 대거 PC방 사업에 뛰어들면서 판로가 생겼고 이내 NC소프트사는 온라인 게임시장의 강자로 등극하게 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국가적 위기였던 IMF사태가 이 회사를 살리는 계기가 됐던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비즈니스맨들이 컨퍼런스의 초청연사들이 쏟아내는 IT트렌드의 장미빛 전망에 가슴 설레이고 있을 것입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한 새로움에 도전하는 것은 사업가의 숙명입니다. 그러나 잠시 뛰는 가슴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앞서나간 비즈니스의 실패 사례를 교훈 삼아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미래 트렌드의 딱! 반걸음만 앞서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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